사천(泗川)을 여는 인재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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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泗川)을 여는 인재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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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사천(泗川)을 여는 인재니움

  

 

구계서원(龜溪書院)은 대밭자락(竹林)에 고고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경상남도 사천시 만죽산(萬竹山) 기슭 고요한 명당에서 기품을 잃지 않고 400년의 시공을 넘어서고 있다. 잡초가 간간히 섞인 돌계단 위쪽의 기와지붕 이끼가 두껍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라고 했던가. 세월과 함께 묻혀간 인재들의 자리대신 옛 서원의 정취만이 가득하다.

조선 명종 때 학자 구암 이정(李楨 1512-1571)을 기리기 위해 1606년에 세운 구계서원은 숙종 때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지만 대원군의 서원철폐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이정은 예조 때 문과 별시에 장원 급제해 지금의 문화체육부 격인 예조의 참판 다음서열 정랑과 선산부사를 거쳐 벼슬길에서 평생을 마친 말하자면 국가공무원이다. 그의 청초한 뜻을 이 서원에 기리고 있다. 인재를 육성하고 학문을 닦던 본거지로 구계서원은 당시 삼천포-사천 지방을 잇는 서부경남 해안지방의 국립대학 역할을 했으리라.

   
▲사천시 사천읍 구암리 구계서원의 전경.

사천시 해안선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광포만 바다가 시야를 확 틔워준다. 썰물로 드러난 갯벌에는 곡선의 물길이 흐르고 망둥어를 잡는 뱃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구계서원에서 멀지 않은 사천 곤양의 바닷가를 돌아서니 멀리서도 확 도드라져 보이는 메머드급 시설물 하나가 해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시골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서울에서 4시간 이상을 달려야 도착하는 사천 해변의 새로운 볼거리를 세워 놓은 듯하다.

발걸음을 재촉해보니 'LIG 인재니움' 이었다. 재능과 자질, 능력, 현명함을 뜻하는 라틴어 '인재니움'이라는 이름으로 LIG가 지역사회와 기업의 인재양성을 위해 세운 신개념 연수원이다. 연수원 하면 떠오르는 재래식 학교 같은 선입견이 확 지워지는 디자인에 눈이 즐겁다. 4만평이 넘는 부지에 호텔 수준 객실 200개와 첨단 교육관, 스포츠 레저시설, 산책로, 미술 조각 전시장까지 한 시간 이상의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예상을 깨는 엄청난 투자가 은근히 걱정될 정도다. 한강이남에서 가장 잘 갖춰진 사회인 교육센터로 손꼽힌다니 소문내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미술가 이상남의 대형 작품과 뉴욕시 지하철 모자이크 작품으로 유명한 김정향의 45미터 걸작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3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전면이 광포만 앞바다를 볼 수 있도록 대형 유리로 설계돼 자연과 사람과 건축물이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교합으로 단단히 묶여져 나오는 느낌이다. 객석에서 바라보니 물길의 중심에서 하늘의 중심이 되어가는 곳, 자연과 기술 전통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는 고장. 사천(泗川)을 열어가는 '인재니움'의 쌍방교합이 흐뭇하다.

   
 ▲사천시 곤양면 광포만에 자리한 LIG 인재니움.

인재니움 앞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투입한 '사천포 해전'의 현장이다. 1592년 일본수군은 조선수군과의 결전에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서해 진출의 기회를 엿보다가 노량해협을 지나 전라도 지방으로 진격을 모색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영 수군과 합류해 사천포 해안에서 선박 13척을 불태우고 2600명의 왜구를 도살시켰다. 판옥선보다 앞세운 거북선에서 사자총통이 뿜어내는 화력에 일본 침략군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사천포해전은 임진왜란 전사(戰史)의 한 획을 그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사천에는 거북선 연구소에 폴리텍 항공대학을 비롯한 21세기형 미래우주산업 단지가 배치돼 있다. 사천 비행장을 모태로 시작된 항공산업과 거북선의 성능이 최초로 검증된 고장에 걸맞게 첨단방위산업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어우러질 교육시설에 대한 기대로 사천군수와 곤양면 주민들은 인재니움의 준공식 현장을 찾아와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무협장편소설 사천당가(四川唐家)에서 그려지는  운사 당호연의 신무협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사천성(四川省)과 같은 지명 때문에 더 유명한 사천(泗川)이 첨단시대로 나아가는 다리를 만난 것일까.

일부 재벌의 무모한 몸집불리기와 승자독식형 경영세습으로 민초들은 속이 부글거린다. 공생(共生)을 버리고 독생(獨生)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베풀고 나누면서 맛보는 행복과 만족감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공생을 저버리는 행태들에 등을 돌리다가도 기업들이 지역사회에 다가서는 현장을 만나면 마음이 달라진다. 기업과 지역사회의 동행(同行)이 늘어나고 쌓이면 그 열매는 경쟁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17세기 구계서원 이정 선생의 인재양성 정신이 21세기 'LIG 인재니움'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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