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테는 공산품이다. 안경알은 의료기기다. 안경테에 알을 끼운 온전한 의미의 '안경'은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시야가 흐린, 넓은 의미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오래 전 개발됐다. 다리가 불편한 환자들이 사용하는 목발과 활용되는 성격 면에서 같다.
수많은 안경사들이 9일 서울역광장에 모였다. 다가선 기자에게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안경은 아무나 취급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닙니다. 시력, 눈의 생김새, 얼굴형태 등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전문가 영역입니다. 밥그릇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안경 전문가들의 자존심마저 짓밟은 행위로 밖에는……"
신세계 이마트가 '반값안경테'를 판매하고 있는 데 대한 강한 반발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인해 영세상권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모습으로 얼핏 비쳐진다. 유사사례는 많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맞서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도가 다르다.
'반값'이라는 문구에는 기존 안경사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즉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써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 이마트는 '거품을 뺐다'는 표현에도 거침 없다.
안경은 브랜드와 성능, 디자인 등에 따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정찰제가 없는 품목인 탓에 가격도 제각각이다.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안경테는 물론 안경알 모두가 여기에 해당된다. 시중 가격에 비해 '반값'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마트가 중국산 저질 안경테를 비싼 가격에 책정한 뒤 반값으로 판매한다 해도 소비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 길이 없다"는 안경사들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들이 분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자다.
내 몸에 적합한 안경을 찾는 과정은 '안경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들이 주도한다. 시력과 난시,근시∙원시 여부에 따라 취사선택하게 되는 안경알, 코 또는 귀의 높이와 모양에 따라 달라지는 안경테 모두 전문가 영역이다.
때문에 "고객님 잘 어울리세요"라는 말로 구매를 부추기는 이마트의 풍경은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낮은 가격에 현혹된 소비자들은 양질의 서비스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 절대적인 시장에 이마트가 굳이 뛰어든 명분이 단순 '이윤추구'에 불과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안경에까지 이마트가 손을 댈 필요가 있었을까요. 영세 영업장에서 일하는 안경사들 다 죽으라는 의미인 것 같아 답답하네요."
대한안경사협회 관계자가 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의료기기가 아닌 공산품을 판매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이마트의 주장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