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진행할 것까지 있느냐'는 식의 전화가 삼성전자와 LG전자 쪽에서 걸려와……"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국장)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에 따른 446억4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가운데 녹색소비자연대(녹소연)가 소송을 진행키로 해 주목된다.
피해 소비자들을 규합한 뒤 진행되는 단체소송으로, 소송금액만 총 수십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소송의 의미와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국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짚어봤다.
◆ "노트북의 경우 63만원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어"
컨슈머타임스(이하 '컨') : 녹소연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손해배상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이주홍 국장(이하 '이') : 지난 2008년 20만원대 가격으로 많은 판매를 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10kg 전자동 세탁기 3개 모델이 합의라도 한 듯 판매가 중단됐다. 그 대신 고가인 드럼세탁기 모델은 가격이 상승했다. 소비자의 선택권은 자연스럽게 축소됐고 드럼세탁기를 구매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담합한 제품은 전자동 세탁기(10Kg), 드럼세탁기(10Kg, 12Kg, 15Kg), 평판 TV, 노트북 PC 등이다. 모두 교체주기가 빠른 가전제품들이다. 소비자들의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컨 : 소비자들이 궁금한 것은 소송에 참여하면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참여기준과 함께 설명해 달라.
이 : 앞서 언급한 가전제품을 2008년도에 구입한 소비자라면 누구나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 가령 당시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노트북을 구입한 소비자가 재판까지 갔다고 가정해보자. 승소했을 경우를 전제로 깔면 기본적으로 위자료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담합으로 인해 부당하게 인상된 소비자가격 20만원도 돌려받을 수 있다. 법적으로 정해진 변호사의 성공보수 비용 10%를 떼면 63만원이 최종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 된다. 성공보수비용의 상당부분은 향후 소비자공익소송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컨 : 승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나. 과거 이와 비슷한 전례가 있는가.
이 : 지난 2007년 시작된 유류업계의 담합관련 소비자 집단소송이 대표적이다. 상위 4~5개 대형 정유사들이 총 2000억원의 과징금을 맞은 사건이다. 1심과 2심에서 담합사실이 인정됐다가 뒤집히는 등 각축을 벌였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달리 담합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업체들도 있었던 까닭에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2012년 현재 3심이 진행 중인데 올해 안으로 최종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이번 담합건은 양상이 다르다. 증거가 확실한데다 달랑 2개 기업만이 담합에 연루돼 있어 조사 범위도 (정유사들에 비해) 비교적 좁다.
컨 : 재판으로 간다고 가정하면 참여인원과 금액 등 전체 소송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나.
이 : 사상 최대금액이 걸린 소송이 될 가능성이 있다. 노트북만을 놓고 계산해보자. 1000명만 참여해도 위자료(50만원) 및 부당하게 인상된 소비자가격(20만원)을 합산하면 무려 7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개인소비자 외에 법인, 즉 회사가 소송을 걸어오는 상황이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노트북을 2008년에 교체해준 법인사업자들은 한꺼번에 적게는 수십대에서 많게는 수백대를 한꺼번에 구입했을 수 있다. 평판TV나 냉장고도 수량은 적어지겠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소송에 참여하는 인원이 수천명을 넘길 수 있다는 의미로, 소송비용도 덩달아 수십억원대 이상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컨 : 삼성전자와 LG전자 쪽이 가지고 있는 당시 판매 데이터만 확보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지만 판매량과 관련된 자료는 기밀이라는 것이 양쪽 모두의 답변이다. 그런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우리(녹소연)쪽에 전화를 걸어와 '소송을 진행할 것까지 있느냐'는 식의 전화도 했다. 피해소비자를 구체적으로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것이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걱정할 문제지만 일리는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미 3년이상 지난 현 시점에서 당시 구입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물증이 상당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A/S를 받은 내역과 카드결제내역 등 피해 소비자들이 신경을 써서 확보를 해야 하는 문건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컨 : 정부의 부실한 정책이 기업들의 담합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이 :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기업의 담합행위(동법 19조)가 적발돼도 매출액의 10%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평균적인 과징금 처분은 매출액의 2.3%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리니언시제도'를 악용해 돈 한 푼 납부하지 않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의 경우 담합이 적발된 회사는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 처분을 받고 문을 닫을 정도의 추가적인 제재를 당한다. 우리나라 역시 현행법률의 개정을 통해 과징금을 높이고, 반복된 담합은 가중처벌하며, 관련자는 형사처벌 하는 등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특히 담합과 관련한 소송기간을 대폭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앞서 밝혔듯 3년이 넘도록 소송결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기도 하고 (소송을 진행한 쪽에) 항의를 하기도 한다.
3심까지 진행되는 법적 절차를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
컨 : 소송참여를 고려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 기업들 입장에서는 총 소송비용이 어느 정도 까지 올라가느냐가 큰 심리적 압박요인이다. 때문에 소비자 개개인을 대상으로 소송에 참여하지 않게끔 사전 작업을 하기도 한다. 경품이나 포인트를 제공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 IPTV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일방적으로 약정을 변경해 한국소비자원의 집단분쟁조정을 받은 한 통신사가 이런 방식을 썼었다. 소송 전후 달콤한 물질적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