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는 해외 發(발) 경제 불황에 '바람 앞 촛불'처럼 휘청거렸다. 물가는 치솟고, 가계는 부실해졌다. 청년실업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졌지만 '프리미엄'이나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은 날개돋힌 듯 팔렸다. 기업들의 노골적인 계층 차별화 마케팅, 즉 '삶의 질'을 소비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춰 소비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데 따른 결과다.
유기농우유와 일반우유 제품은 성분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붙여 3배나 비싸게 팔았다.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시장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 가격차만큼 이들의 사회적 위치나 중량감이 차이가 난다는 묘한 마케팅에 시장은 춤을 추었다. 저렴한 기성화를 신는 사람보다 고가의 수제화를 신는 사람의 삶의 질이 낫다는 포장으로 프리미엄마케팅은 성업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심리마케팅에 대항해 일반소비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부자마케팅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만의 소비대오를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본보는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아 소비자들에게 보다 '똑똑한 소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프리미엄 제품, '빛 좋은 개살구'
#사례1=우유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른 A씨는 '유기농' 제품이 같은 이름의 일반제품 보다 용량이 적음에도 훨씬 비싼 가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양유업의 '맛있는 우유GT 유기농'(750m)은 3900원인 반면 '맛있는 우유GT'(1000ml)는 2140원이었던 것.
▲(사)소비자시민모임은 최근 유기농 우유와 일반우유의 가격·품질비교결과를 발표했다. |
#사례2=B씨는 목우촌의 프리미엄제품인 '불에 구운 김밥햄'이 1750원인데 일반 햄인 '주부9단 김밥햄'이 1362원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프리미엄 제품이 일반 제품에 비해 고기함유량이 0.27% 적고, 나트륨이 1.40%, 색소·안정제 등 식품첨가물이 2배 이상 첨가 돼 있었지만 가격은 1.28배 비쌌기 때문.
#사례3=노스페이스에서 큰맘 먹고 비싸게 고어텍스를 구입한 C씨는 세탁 후 눈을 맞았는데 방수가 되지 않아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원래 눈이나 비를 맞으면 옷감은 축축해진다는 점원의 불쾌한 설명이었다.
실제로 노스페이스 고어텍스는 세탁 3회 후 방수기능이 최대 52%까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와 함께 네파와 에코로바는 방수기능이 저가브랜드 트래스패스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은 2~3배 이상 비싸게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만 프리미엄일 뿐 구성요소나 영양성분 등 품질적인 측면에서 일반제품보다 못하다는 연구결과로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가격거품 논란이 끊이질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유색가전이라는 이유로 같은 제품보다 50~60만원 비싸게 판매하는가 하면, 프리미엄 휴대전화 액세서리는 전화기 가격보다 비싸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생활연구원과 녹색소비자연대 등 소비자단체들은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 제품들을 비교한 '가격·품질 비교정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햄, 소시지, 우유 등 식음료는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제품의 영양성분이 별반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반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지지만 프리미엄이란 이름으로 2~2.4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아웃도어와 태블릿PC 등도 신제품과 기존제품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기능성과 성능을 강조하며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가격거품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녹색소비자연대는 햄과 소시지가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제품의 성분 차이에 비해 가격차이가 심하다고 밝혔다. |
◆ "제품정보공개로 합리적인 소비 이끌어야"
프리미엄 제품들은 비싸더라도 건강하고 안전한 재료를 사용했을 것이란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파고 들고 있어 소비자들의 보다 꼼꼼히 따져보는 소비습관이 요구되고 있다.
프리미엄이라고 맹신하기에 앞서 구성요소와 영양성분을 살펴보고 다른 제품과의 가격비교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민정 계명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불황기에 작은 것이라도 고가의 제품을 가지려고 하는 소비자들의 '가치소비' 욕구가 프리미엄 제품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며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선 구성요소를 꼼꼼히 따져보고, 타제품과 가격도 비교해보는 소비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웰빙, 친환경 등을 강조한 프리미엄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이들 제품이 왜 웰빙이고 친환경 제품인지 판별할 수 있는 성분 함유량 표시가 미약한 실정"이라며 "이러한 부분이 강화된 정책적 제도가 마련된다면 소비자들의 보다 합리적인 소비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왜 프리미엄 제품인지, 어떤 기능이 강화된 것인지 소비자들 스스로 찾아서 비교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언론,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품들에 대한 정보공개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컨슈머타임스 신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