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넬의 대표제품 2.55 빈티지 |
지난해 한국 경제는 해외 發(발) 경제 불황에 '바람 앞 촛불'처럼 휘청거렸다. 물가는 치솟고, 가계는 부실해졌다. 청년실업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졌지만 '프리미엄'이나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은 날개돋힌 듯 팔렸다. 기업들의 노골적인 계층 차별화 마케팅, 즉 '삶의 질'을 소비패턴에 억지로 끼워 맞춰 소비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데 따른 결과다.
유기농우유와 일반우유 제품은 성분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유기농'이라는 단어를 붙여 3배나 비싸게 팔았다.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시장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 가격차만큼 이들의 사회적 위치나 중량감이 차이가 난다는 묘한 마케팅에 시장은 춤을 추었다. 저렴한 기성화를 신는 사람보다 고가의 수제화를 신는 사람의 삶의 질이 낫다는 포장으로 프리미엄마케팅은 성업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심리마케팅에 대항해 일반 소비자들은 이런 때일수록 부자마케팅에 현혹되지 말고 그들만의 소비대오를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본보는 '임진년(壬辰年)' 새해를 맞아 소비자들에게 보다 '똑똑한 소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루이비통? 샤넬? 어떤 가방 살 거야?"(예비신랑)
"자기는 '샤테크'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샤넬백 사야지."(예비신부)
예비신부 최모씨는 최근 가방을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 명품 매장을 찾았다. 최씨가 매장에 들어서자 점원이 반갑게 맞았다. 한눈에 예비신부임을 알아챈 점원은 600만원을 호가하는 인기 모델을 추천했다.
◆ 샤넬, 루이비통 가격 올리니 매출도 '쑥'?
점원은 "예비신부님들이 많이 찾는 제품"이라며 "잘 어울린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최씨는 '남들도 하나쯤 갖고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구매를 결정했다.
최씨는 "3년 전만 해도 300만원 대에 살 수 있었던 제품인데 값이 많이 올랐다"며 "비싸진 이후 쉽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갖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업체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가격을 크게 올리는데도 매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어 비합리적 소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관세도 철폐됐지만 발효 직전 제품가격을 올린 탓에 정작소비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품브랜드 매출은 큰 폭으로 늘어 '비싸야 잘 팔린다'는 인식이 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에 팽배 하다는 지적이다.
루이비통의 대표 가방인 스피디 모델은 2월 가격인상에 이어 4개월만에 또 가격을 올렸다.
샤넬의 인기 모델인 2.55빈티지는 3년 사이 값이 두 배 가량 뛰었다. 2008년에는 360만원 정도하던 가격이 최근에는 600만원을 훌쩍 넘었다.
프라다는 지난 7월 제품 값을 대폭 인상했다. 프라다 원단으로 만든 가방은 3%, 의류는 9%, 청바지는 12% 올렸다.
한∙EU FTA 발효로 관세가 철폐됨에 따라 8~13%가량의 가격 인하효과를 기대했지만 소비자들이 실제 체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부 명품브랜드들은 가격을 소폭 내렸지만 '생색내기'라는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7월 FTA 발효 직후 한달간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 국내 주요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784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7월보다 17% 늘어난 수치다.
이 같은 매출 신장세를 볼 때 관세철폐에 따른 차익은 명품업계에게 돌아갔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 "소득 수준에 적합한 소비인지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명품의 실질적인 가치에 따른 가격을 지불했는지, 과시욕구를 채우기 위한 소비인지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비쌀수록 잘 팔리는 명품을 합리적 소비로 볼 수는 없다"며 "다만 명품 소비에는 과시 소비적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상위 1% 계층만 가질 수 있는 명품을 1%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산다고 할 때 소득 수준에 적합하지 않은 소비는 아닌지 소비자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명품소비의 경우 심리적인 가치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단순히 제품 기능과 가격만 따져 합리적소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영신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명품을 소비할 때는 제품 자체의 가치도 있지만 브랜드가 주는 즐거움, 심리적 가치가 크게 작용한다"며 "재화를 소유하는데 따른 즐거움을 가격으로 매긴다면 (비싼 명품 소비를) 비합리적 소비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성 교수는 "소비자체가 본인의 소득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문제"라며 "소비가 소득범위를 벗어나면 경제활동상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명품을 구매할 때 본인의 소득수준과 만족감, 실질적인 제품의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값을 올릴수록 더 잘 팔린다는 한국 명품시장의 '아이러니'가 새해에는 사라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컨슈머타임스 최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