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환불 약속해놓고 학습지 교사가 '대신'
학습지 선생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육을 선택하는 학부모·학생들까지 이 회사들 갑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 학습지 교사 A씨는 오전 10시 출근해 밤 10시까지 수업으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사무실 출근 업무를 보고하고 학습지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A씨는 근로자가 아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B씨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4대보험과 퇴직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데 임금은 또 따로 복잡한 체계가 있다"면서 "그렇다고 개인 사업자처럼 책값, 인쇄비 제외하고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도 아닌 그 어느 쪽 대우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기본급 역시 근로에 대해서는 받지 못하고 책값을 제외한 수수료와 실적급만 받는다"고 덧붙였다.
학습지 교사는 노동법상 특수고용직(특고) 노동자로 사실상 근로자처럼 일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정의하는 '근로자' 개념에서 배제된 채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종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학습지 회사들의 횡포는 도를 넘고 있다.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학습지 교사들의 근로여건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재능교육 관계자는 "재능교육은 노사협의로 대화는 그래도 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몬이나 눈높이는 더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학습지 회사들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재능교육에 국한된 것이라며 노조와 대립하고 있다. 구몬의 경우 노조가 대교와 교원구몬을 상대로 지난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두 회사는 자사 학습지교사가 노조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노조 구몬지부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원구몬 교섭요구사실 공고 시정신청' 을 접수했지만 노동위는 구몬지부가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노조법상 노동자 여부에 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교원구몬에는 노조가 학습지노조밖에 없어 노조의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할 필요가 없는 사업장이라고 판단했다. 노조 대교지부의 경우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모두 노동자로 인정했지만 회사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는 또한 대다수 고객들인 학부모·학생들도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과 연관된다.
재능교육 학습지를 신청했던 학부모 C씨는 최근 학습시간 조정이 어려워 환불을 요구했는데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8월에 학습지를 그만두려고 7월 말 담당교사에게 전한 뒤 미리 지급한 회비를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이미 교재가 지급됐다는 이유로 환불이 어렵다고 했다"면서 "대신 월말에 사비로 지급해준다고 해서 미안한 마음에 한 달 더 연장했다"고 말했다.
환불주체가 업체로 돼 있는 약관과는 달리 담당교사가 개인적으로 환불해 주겠다는 답을 듣고는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든 것이다.
학습지 교사들은 업체가 부모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유도해 학습지 계약 취소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 계약이 취소된 것처럼 말한 뒤 자신이 직접 학습지 비용을 납부하기도 한다.
회원이 과목수를 줄이거나 해지·환불을 요구할 때 전적으로 책임은 학습지 교사에게 전가된다. 회원들은 회사에 돈을 지불하고 약관상 환불 역시 가능하지만 사측은 환불을 학습지 교사에게 월급으로 대신 해줄 것을 강용하고 있다. 또 회사에 피해를 입힌다며 면박을 주고 무시하는 발언들을 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정신적 피해를 야기한다.
업체들은 학습지 교사가 위탁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여서 일부 교사들이 실적유지를 하려다 빚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적에 따라 업체 관리직급 직원들이 생산 장려수당 명목으로 가져가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의 제재가 있었다.
개인 사업자라는 학습지 교사들은 사실상 업체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아 불이익도 감수해야 했다. 이에 따라 학부모·학생들이 환불이나 해지를 요구하지 못하게끔 꼼수가 횡행해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봐야했던 것이다.
학습지 노조 재능교육 지부 관계자는 "회사는 보이지 않게 학습지 회원이 그만둔 과목수 이상의 실적을 유지하지 않으면 고용 유지가 어려운 것처럼 압박한다"며 "학습지 교사가 자기돈으로 유령회원을 만들어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실적이 매달도 아니고 거의 매주 체크하는 수준에다 매번 유지 또는 추가의 1이상으로만 가능하게 조여와 심리적 압박감도 크다"면서 "그럼에도 회사의 법규에 저항하거나 영업 지침 등을 따르지 않는다면 해고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대교·교원구몬·웅진씽크빅·한솔교육·재능교육·한국몬테소리 등 주요회사에서 일하는 학습지교사는 4만3000명에 이른다.